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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생 까만머리 앤

'삶/까만머리 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20 [까만머리 앤] Chapter One: 아버지의 품속은 요술상자 (5)
  2. 2010/07/11 프롤로그 (4)
  3. 2010/07/11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5)
내가 어렸을때, 원래 인정이 많고 사랑이 많으셨던 우리 아버지는 늑둥이 막내딸인 나를 더욱이나 귀여워하셨다.
엄마는 내가 잘못할때마다 엄하게 혼을 내셨지만, 아버지는 늘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씩씩하시고 활발하시며 모든 운동에 다재다능 하시며 새로운 모험을 항상 즐기는 그런 분인 반면, 아버지는 늘 햇살아래 파이프를 피우시며 그 커다란 안경사이로
세상이야기, 문학이야기가 가득한 책만 읽으시는 분이셨다.
우리 아버지는 커피, 담배, 술, 책 그리고 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것 없이 사실 분이셨다.
그만큼 책을 사랑하셨고 도무지 나에겐 현기증밖에 공급하지 않는 한글보다 한자가 많은 책들을 그리도 재미있으시다며 자랑하셨다.
아버지는 그림도 잘 그리셔서 가끔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초가집을 하나 그려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이 조용하고 평온한 곳, 이 욕심없는 초가집에서 너와 함께 살고싶구나.."

아버지는 이 세상을 별로 안 좋아하셨던 분이시다.
그래서 생신날에 내가 편지를 써드리면, 늘 조용히 혼잣말을 하셨다.
'태어난 날이 뭐 축하할 날이라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을 안 좋아하신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태어나기 전 먼저 앞에 보낸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딸 이었다.
언니와 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내 얼굴이 되었다고 아빠는 기쁜듯 슬픈듯 말씀하셨다.
그 다른 수식어도 필요없이 아버지는 '선비' 같은 분이셨다.

태어났을때부터 말라 비틀어진 아기였던 나는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많이 자란뒤 우리 오빠에게 "오빠 나 태어났을때 봤어? 귀여웠어?" 라고 물었을때
포동포동한게 너무 귀엽고 앙증맞았어 라는 원했던 대답대신 "외계인 인줄 알았어" 라는
대답을 들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플때는 엄마의 등에 엎혀 "하나님..하나님.."이라 읊조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내게는 약이되었고 잠이 들때까지 재잘재잘 떠들면 아버지가 "허허허" 웃는 그 따뜻한 목소리는 내게 자장가가 되었다.

아버지는 출판사에서 사전 번역을 하셨는데, 늘 퇴근 시간쯤이 되면 나는 집에 꼼짝말고
전화 벨소리만 기다렸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만 통하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여보세요~"
"오늘은 뭘 사갈까? 뭐 먹고싶어?"
"붕어빵!"
"허허 알았다!"

이 날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그 낡은 양복 안에서 붕어빵이 나왔다.
철 없이 이거 사주세요 저거 사주세요 하던 딸아이의 어리광이 아버지에게는 이세상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버지와 둘이서 슈퍼에 걸어가다가 내가 어렸을때 유행했던 손난로가 들어간 곰인형을 봤다.
"아빠 나 저거 갖고 싶어.."
"저게 뭔데?"
"응, 저거 혜림이도 갖고 있는데 곰인형 배에 손난로 들어있어서 되게 따뜻해!"
"그런게 뭐가 필요해? 됬어"
"응.."

나는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말씀하시지만, 뭐 사달라고 한번 말해보고는 안된다는 대답에 그저 그 자리에서 그냥 단념해버렸다고 한다. 울며 떼를 쓰지도, 바닦에 주저앉아 운적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조르지 않는 그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가슴 아팠을지도 모른다.
바로 다음날 아버지의 품속에서는 그 곰인형이 나를 반겼다.
아버지는 그 인형을 건네며 내게 말씀하셨다.

"허허 고놈 귀엽게도 만들어졌네"

어느날은, 아버지가 강아지를 한마리 품에 안고 오시다가 집에 다 와서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줘 버리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 강아지가 죽거나 다치면 은별이가 맘이 아프겠지..' 라고 생각하셔서
집에 거의 다 와서 다른 사람에게 그냥 줘 버렸다는 말을 어머니가 얼마전에 해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셨다.

지금 이 추운 겨울, 문득 생각난다.

아침에 학교갈때 춥지 말라고,
내 교복을 몰래 꺼내서 난로에 데워두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양복.
둘은 어린 내게 몰래 짜고 항상 요술을 부려주었다.

양복아, 나랑도 함께 요술을 부려줘.

'아빠가 보고싶어..'




학교를 향해가는 딸 아이의 잰 걸음
소슬 바람을 타고 어제도 그랬어라

-아버지가 쓰신 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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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John 2010/07/20 17:42

    마치 소설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아름다운 그림이 머리에 자연스럽게 그려질 정도네요. 자세한 디테일과 이야기 감사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신 아버님이시네요.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7/21 00:48

    비밀댓글입니다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리스마 2010/08/31 16:47

    아~ 아프네요... 참 행복한 삶을 사시는군요. 아버지가 님의 품에 그대로 계시는 듯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프롤로그

2010/07/11 12:53 : 삶/까만머리 앤
2007년 5월 4일 노을이 붉게 병원 창문에 드리워지던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떠나갔다.
언제 어떻게 불러도 나를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그 이름 '아빠'.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때만은, 우리 둘 사이에 그 어떤 말도 불필요했다.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갔지만, 그 어떤 생각도 정리되지 못한체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떠돌았다.

그 마지막 얼굴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언제나 인자했던 아빠의 얼굴은 그날 따라 더 사랑이 가득했다.
아빠의 곱고 긴 손가락을 모아 꼭 쥐고 나는 청각은 남아있다는 의사의 말에
아빠가 떠나기 전날 하루종일 그의 옆에 앉아서 '아빠 사랑해요..미안해요..' 라는 말만
반복하며 전하고 또 전했다.
그리고 아빠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은 '나도 사랑해 은별아' 였다.
너무도 깨끗하고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내게 온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사랑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날 부터 지금까지 아빠가 내게 남겨준 그 마지막 한마디로 살았다.
힘들어도 그 한마디에 다시 일어서서 자랑스러운 아빠의 막내딸로 당당하게 길을 걸었다.

왜 떠나야 했을까..
왜 하나님은 아빠를 데려가야 했을까..
아빠를 차가운 곳으로 힘겹게 떠나보낸 엄마와 나는 텅텅 비어버린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는 아빠가 산책할때 신던 신발이 고이 놓여져 있었다.

"여보 미안해.. 꼭 같이 돌아왔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미안해.."

엄마의 슬픈 그 한마디에 나는 내 귀를 틀어 막아버렸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있던 그 닷새동안 나는 평생을 울어도 다 못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울지 않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약해지면 엄마를 지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엄마를 이해하고 지킬수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현관을 지나 그대로 아빠가 사고전에 앉아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었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아빠의 책상위에는 반쪽만 남아 시들은 사과가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사과 옆에는 아빠가 한국의 유명한 출판사에서 근무할적 번역한 영한 대사전이 놓여있었다.
얼마나 그 손끝이 사전을 많이 스쳤는지, 얇은 종이들은 이리저리 낡아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아빠 옷장을 열었다.
옷에 욕심이 없었던 아빠의 낡고 오래된 양복에서는 아빠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옷을 끌어 안고 아빠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나는 옷장 문을 닫고 그 안에서 몇시간이고 미친듯이 울며 아빠를 불렀다.

지금 이렇게 울고나면 다시는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내가 울면 아빠가 나보다 더 많이 아파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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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ylzh2000 2010/07/12 18:19

    모든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에서 지혜와 깨달음 역시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그 마법의 힘을 빌어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할 수 있으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자 이제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다음단계를 향해 한계단 더 올라보자.

    살아있다는 이유가 될 까요? 누구든지 인생의 굴곡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쳐선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깊이는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인생굴곡을 용기있게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줬던 헤르만헤세의 계단 (Die Stufe)을 소개합니다.
    인생은 여러개의 계단들로 하늘을 향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계단위에서는 지금 내가 서있는 한계단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또 다음 계단의 시작까지는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한지 알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만이 다음단계로 가는 계단을 선택할 수 있으며, 다만 훗날 돌아본 나의 인생계단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알수 있을 뿐입니다.

    고은별님, 용기내어 주어진 계단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오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John 2010/07/13 19:33

    잘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하기 힘든 가슴아픈 스토리가 있는 것같네요.

예전에 썼던 제 굴곡많던 인생 이야기입니다.
출판사와 이야기가 오가며 책으로 내려고 했었지만, 내가 꼭 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넣지 않았으면
하는 말에 저는 그 자리에서 뒤돌아 섰습니다.
어린것이 무슨 인생을 얼마나 겪었다고 이런걸 쓰느냐 건방지다고 생각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내 시점에서 내가 살아온 날들은 사람들과 나눌만 하다고 생각해서..
또 한번 이렇게 써내려갑니다.
원래 썼던 원고를 바탕으로 조금은 더 성숙해진 지금의 내가 다시 이야기를 써내려 가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무쪼록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힘을 얻고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면 저는 더이상 바랄것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빠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2010년 7월 11일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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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롱스 2010/07/12 13:15

    역시~

    미래의 작가선생 맞네 ㅎ

    미래의 점장이가~ ^^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John 2010/07/13 00:32

    자신의 인생이야기? 소설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라는 말씀?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만머리앤 2010/07/13 13:11

    지어낸이야기는 아무래도 쓸때 한계가 있겠죠, 제 이야기입니다. 소설이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