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잘못할때마다 엄하게 혼을 내셨지만, 아버지는 늘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씩씩하시고 활발하시며 모든 운동에 다재다능 하시며 새로운 모험을 항상 즐기는 그런 분인 반면, 아버지는 늘 햇살아래 파이프를 피우시며 그 커다란 안경사이로
세상이야기, 문학이야기가 가득한 책만 읽으시는 분이셨다.
우리 아버지는 커피, 담배, 술, 책 그리고 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것 없이 사실 분이셨다.
그만큼 책을 사랑하셨고 도무지 나에겐 현기증밖에 공급하지 않는 한글보다 한자가 많은 책들을 그리도 재미있으시다며 자랑하셨다.
아버지는 그림도 잘 그리셔서 가끔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초가집을 하나 그려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이 조용하고 평온한 곳, 이 욕심없는 초가집에서 너와 함께 살고싶구나.."
아버지는 이 세상을 별로 안 좋아하셨던 분이시다.
그래서 생신날에 내가 편지를 써드리면, 늘 조용히 혼잣말을 하셨다.
'태어난 날이 뭐 축하할 날이라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을 안 좋아하신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태어나기 전 먼저 앞에 보낸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딸 이었다.
언니와 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내 얼굴이 되었다고 아빠는 기쁜듯 슬픈듯 말씀하셨다.
그 다른 수식어도 필요없이 아버지는 '선비' 같은 분이셨다.
태어났을때부터 말라 비틀어진 아기였던 나는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많이 자란뒤 우리 오빠에게 "오빠 나 태어났을때 봤어? 귀여웠어?" 라고 물었을때
포동포동한게 너무 귀엽고 앙증맞았어 라는 원했던 대답대신 "외계인 인줄 알았어" 라는
대답을 들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플때는 엄마의 등에 엎혀 "하나님..하나님.."이라 읊조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내게는 약이되었고 잠이 들때까지 재잘재잘 떠들면 아버지가 "허허허" 웃는 그 따뜻한 목소리는 내게 자장가가 되었다.
아버지는 출판사에서 사전 번역을 하셨는데, 늘 퇴근 시간쯤이 되면 나는 집에 꼼짝말고
전화 벨소리만 기다렸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만 통하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여보세요~"
"오늘은 뭘 사갈까? 뭐 먹고싶어?"
"붕어빵!"
"허허 알았다!"
이 날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그 낡은 양복 안에서 붕어빵이 나왔다.
철 없이 이거 사주세요 저거 사주세요 하던 딸아이의 어리광이 아버지에게는 이세상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버지와 둘이서 슈퍼에 걸어가다가 내가 어렸을때 유행했던 손난로가 들어간 곰인형을 봤다.
"아빠 나 저거 갖고 싶어.."
"저게 뭔데?"
"응, 저거 혜림이도 갖고 있는데 곰인형 배에 손난로 들어있어서 되게 따뜻해!"
"그런게 뭐가 필요해? 됬어"
"응.."
나는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말씀하시지만, 뭐 사달라고 한번 말해보고는 안된다는 대답에 그저 그 자리에서 그냥 단념해버렸다고 한다. 울며 떼를 쓰지도, 바닦에 주저앉아 운적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조르지 않는 그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가슴 아팠을지도 모른다.
바로 다음날 아버지의 품속에서는 그 곰인형이 나를 반겼다.
아버지는 그 인형을 건네며 내게 말씀하셨다.
"허허 고놈 귀엽게도 만들어졌네"
어느날은, 아버지가 강아지를 한마리 품에 안고 오시다가 집에 다 와서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줘 버리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 강아지가 죽거나 다치면 은별이가 맘이 아프겠지..' 라고 생각하셔서
집에 거의 다 와서 다른 사람에게 그냥 줘 버렸다는 말을 어머니가 얼마전에 해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셨다.
지금 이 추운 겨울, 문득 생각난다.
아침에 학교갈때 춥지 말라고,
내 교복을 몰래 꺼내서 난로에 데워두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양복.
둘은 어린 내게 몰래 짜고 항상 요술을 부려주었다.
양복아, 나랑도 함께 요술을 부려줘.
'아빠가 보고싶어..'
학교를 향해가는 딸 아이의 잰 걸음
소슬 바람을 타고 어제도 그랬어라
-아버지가 쓰신 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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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설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아름다운 그림이 머리에 자연스럽게 그려질 정도네요. 자세한 디테일과 이야기 감사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신 아버님이시네요.
많이 보고싶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래서 회사에서 퇴근하실때 전화하셨어요 ^^
아~ 아프네요... 참 행복한 삶을 사시는군요. 아버지가 님의 품에 그대로 계시는 듯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